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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파가 앗아간 봄... 전국 꽃축제장 '개화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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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신안군은 2월 28일 개막 예정이었던 '제1회 섬 홍매화 축제'를 일주일 뒤인 3월 6일로 연기했다. 신안군 관계자는 "예년 같으면 이맘때 매화가 절정을 이루었을 텐데, 올해는 강추위로 개화가 크게 지연되고 있다"며 "축제 개막은 연기됐지만, 방문객들의 실망을 최소화하기 위해 축제장 주변에 방풍막을 설치하고 일부 수목에는 비닐을 씌우는 등 '봄꽃 피우기' 작전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안군은 이번 축제를 통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관광객 유치 효과를 기대했으나, 개화 지연으로 인한 일정 연기로 예약 취소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어 지역 상인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한 펜션 업주는 "축제 기간에 맞춰 예약이 꽉 찼었는데, 일정이 미뤄지면서 취소 문의가 빗발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전남 순천의 '매곡동 탐매축제' 역시 예정된 2월 22일에서 3월 2일로 미뤄졌다. 순천시 관계자는 "지난해 같은 시기에는 홍매화 개화율이 80%에 이르렀으나, 올해는 아직 봉오리만 맺힌 상태"라며 "관광객들이 아름다운 매화를 충분히 감상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전남 구례의 대표적인 봄 축제인 '산수유꽃축제'도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늦은 3월 15일 개막하기로 결정했다.
반면, 경남 양산시는 고심 끝에 3월 1일부터 3일까지 예정된 '원동매화축제'를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 양산시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추위로 활짝 핀 꽃을 보기는 어렵지만, 이미 공연 등 행사 준비가 완료되어 축제 일정을 조정하기 쉽지 않다"며 난처한 상황을 전했다. 양산시는 올해 초 기상예보 등을 종합해 축제 날짜를 예년보다 일주일 앞당겨 잡았으나, 갑작스러운 한파로 계획이 무산됐다. 현재 대부분의 매화나무에는 꽃봉오리만 맺힌 상태여서 관광객들의 실망이 예상된다.
벚꽃축제도 이상기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대표적인 벚꽃 명소인 경남 창원시 진해구의 '진해군항제'는 올해 개최일을 3월 28일로 결정했다. 창원시 관계자는 "그동안은 축제 개최일 기준을 '개화 예측일'에 맞췄으나, 변화무쌍한 날씨 탓에 '만개 예측일'로 기준을 변경했다"며 "이에 따라 지난해보다 5일 늦춰진 일정으로 확정했다"고 설명했다. 진해군항제는 연간 4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는 대형 축제로, 일정 변경에 따른 경제적 파급효과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된다.
충남 금산의 '보곡산골 산벚꽃축제'도 4월 12일부터 20일까지로 일정이 확정됐다. 주최 측인 금산문화관광재단은 "개화 시기에 따라 일정이 유동적일 수 있어, 변동 사항이 있으면 온라인을 통해 즉시 공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날씨 영향으로 축제를 일주일 연기한 경험이 있어 더욱 신중하게 대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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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청 자료에 따르면, 올겨울(12월~2월) 평균기온은 -1.8℃로 지난해 0.7℃보다 무려 2.5℃가량 낮아 개화가 크게 지연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기상 전문가는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가 가속화되면서 계절적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며 "올해처럼 극심한 한파가 찾아오는가 하면, 어떤 해에는 이상 고온으로 꽃이 너무 일찍 피는 등 예측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꽃축제뿐만 아니라 제철 특산물을 주제로 한 축제를 계획하던 지자체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창원시는 지난해 여름 높은 수온 등의 영향으로 미더덕 유생이 대량 폐사하는 사태가 발생해 '제17회 진동미더덕축제'를 전면 취소했다. 창원서부수협 관계자는 "축제를 개최할 만큼의 미더덕 물량이 확보되지 않아 부득이하게 취소를 결정했다"며 "지역 어민들의 생계에도 직접적인 타격이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토로했다.
충남 홍성군은 고수온으로 인한 새조개 생산량 급감으로 '새조개 축제' 명칭을 '새조개와 함께하는 수산물 축제'로 변경하는 고육지책을 선택했다. 홍성군 관계자는 "특정 품목에 의존하는 축제의 한계를 실감하고 있다"며 "앞으로는 다양한 수산물과 문화 콘텐츠를 결합한 축제로 방향을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축제 현황에 따르면, 전국에서 239개의 특산물 축제와 209개의 생태자연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이러한 축제들은 기후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전문가들은 지역축제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정란수 한양대학교 관광학부 겸임교수는 "기후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고, 지역축제도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구조적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이라며 "꽃축제는 지역의 역사·문화·관광 자원을 함께 활용하고, 특산물 중심 축제는 가공품 개발이나 요리대회, 미식 체험 등의 요소를 결합해 지속가능성을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관광학계에서는 이상기후 시대에 대응하는 축제 운영 방안으로 '축제 기간의 유연화'와 '콘텐츠 다변화'를 강조하고 있다. 한 관광 전문가는 "고정된 날짜에 집착하기보다 자연 현상에 맞춰 축제 기간을 탄력적으로 운영하고, 자연 현상에만 의존하지 않는 다양한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러한 변화의 움직임은 이미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은 '산수유축제'를 '봄나들이 축제'로 확대 개편하고, 꽃 개화와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문화공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했다. 또한 제주도는 '유채꽃 축제'에 AR(증강현실) 기술을 도입해 실제 꽃이 만개하지 않더라도 가상으로 꽃밭을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준비 중이다.
지자체와 축제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새로운 축제 모델을 모색하고 있지만, 당장 올해 봄 축제를 준비하던 지역 상인들과 관광업계의 피해는 불가피해 보인다. 관광객들도 축제 일정 변경으로 인한 혼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되어, 각 지자체의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